[시니어 아파트에 삽니다> 시니어 아파트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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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g-Bai Park
dSopsrenot g6h6a4i8r0:let61 fhmd9t0480uyha2cs56171tehYtl3iat ·
<시니어 아파트에 삽니다>
서울 한복판에 살던 저는 약 3년전 수도권 외곽 시니어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먼저 살던 곳 공간의 반 정도 되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어요.
이제 예순이 넘어 인생 정리를 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으니 이 참에 줄이고 정리하고 간편하게 살아보자는 뜻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집 공간을 반으로 줄이면 집에 있던 물건을 얼마나 줄여야 할까요?
반으로? 아니면 3분의 1로? 아마도 5분의 4는 버린 것 같습니다.
덩치 큰 가구들은 모두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시집올 때 장만했던 거울있는 화장대와 큰 서랍장도 포기해야 했고
소파세트, 안마의자, 김치냉장고를 비롯한 여분의 냉장고
6인용 식탁 모든 게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다 정리해야 했습니다.
중고 물품 파는 곳에 넘겨볼 요량으로 앱을 깔고 물건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근사한 이야기를 써서 설명을 올렸어요.
놀랍게도 식탁, 딸의 침대 프레임, 소파, 화장대, 냉장고 등 많은 물건들이 팔렸습니다.
제가 글을 아주 잘 썼던 모양입니다.
운동기구, 책상, 그릇 등은 나눔했구요.
이사하기 전날까지 버리고 또 버리고 정리하고 또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사 전날까지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날설 말이 오고 갔습니다. 저는 쓸모없는 것부터 버리고 간다는 생각이었고
남편은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버린다 주의였습니다.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생각의 방향이었죠.
저는 정말 물건 정리가 힘들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를 협박하기까지 했습니다.
'너~ 내일 죽는다고 해도 이 물건들을 다 가지고 갈거냐?'
정말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물건 정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흉을 볼까 생각하면 당장 정리하지 않고는 못 배길테니까요.
특히 책은 가장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 사연과 역사가 있고 앞으로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게 되면 참고해야 할 자료이니까요.
'그래~ 이제 또 무슨 책을 쓰고 연구를 하냐? 이 세상에 좋은 책은 다 도서관에 있고 서점에 있단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가며 버리고 정리하며 이사를 마쳤습니다.
이제 아주 작은 식탁에서 남편과 둘이 앉아 밥을 먹습니다.
식탁이 어찌나 작은지 글자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합니다.
앉아서 손만 뻗으면 수저 서랍을 열 수 있고 소금통을 집을 수도 있습니다.
의자를 밀고 일어서면 코앞에 냉장고가 있구요.
옷도 몇 벌 남지 않아서 외출할 때 뭘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이니까요. 공공장소에 가거나 강연이 있을 땐 몇 가지 색깔의 똑같은 모양의 재킷을 돌려가며 입습니다.
머리가 복잡하지 않아 아주 좋습니다.
붙박이 옷장을 열면 얼굴 정도를 비출 수 있는 작은 거울이 문짝에 붙어 있어 거기가 제 화장대 노릇을 합니다.
거울 앞에 작은 상자를 두고 거기 몇 가지 화장품을 정리해 놓으니 근시한 화장대가 부럽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립스틱을 모아 작은 용기에 모아놓으니 아주 편리합니다.
그런데 이사를 오니 새로운 반가움이 있었습니다.
예전 KBS 보도국에서 일하던 몇 가정이 이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작정하고 모인 것은 아니고 맨 먼저 이 아파트에 들어온 K선생님이 아는 시람마다 이곳을 소개한 덕분이었습니다.
외형이나 시설은 일반 주거지와 다를 바가 없지만 이 아파트는 60세 이상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어서
단지내 구내식당에서 세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내가 벌써 왜 여기에 들어와야 하느냐고 내심 불만이었던 저는
부엌일을 졸업할 수 있다는 장점에 공기 좋은 이곳이 마음에 쏙 들어 버렸습니다.
KBS 출신 다섯 가족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고 해도
어떤 경우엔 한 달이 지나도 얼굴 한번 마주치기 힘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1주일에 한번씩 구내식당에서 만납시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주 금요일 아침 함께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편의점 옆의 휴게실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예전 보도국 사람들이니 오고 가는 이야기는 뻔하기도 합니다.
그 주에 중요한 시사 문제에 대해 한 말씀씩 할 때면 마치 보도국 본부장 회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는 집 정리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몸 아픈 이야기 병원가는 이야기 용한 의사 이야기도 합니다.
주중에 따로 또 같이 만나기도 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A선생님과 B선생님은 거의 매일 아파트 커뮤니티 룸에서 바둑을 두고
맛집을 발견하면 두 가정씩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갑니다.
최근에 가장 늦게 합류한 C선생님은 신고식을 겸해 마이크로버스를 대절해 우리 모두를 데리고 가을 단풍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 K선생님은 인사도 없이 먼저 천국여행을 떠나셨고
지난 달 B선생님 가정이 미국에 있는 아들들을 보러 긴 여행을 가셔서 이번 겨울은 빈 자리가 많아 허전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니어 아파트로 이사와 정리하고 난 후의 가벼움은 우리 삶에 여유로움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선물처럼 찾아온 느지막한 만남이 우리의 후반전 인생을 소소한 행복으로 든든하게 채워 줍니다.
언제나 기쁘고 행복하게 지금이 가장 젊은 날 오늘이 가장 빛나는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느끼게 해 주면서 말이죠!(아나운서 출신 신은경 회우)
Shing-Bai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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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아파트에 삽니다>
서울 한복판에 살던 저는 약 3년전 수도권 외곽 시니어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먼저 살던 곳 공간의 반 정도 되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어요.
이제 예순이 넘어 인생 정리를 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으니 이 참에 줄이고 정리하고 간편하게 살아보자는 뜻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집 공간을 반으로 줄이면 집에 있던 물건을 얼마나 줄여야 할까요?
반으로? 아니면 3분의 1로? 아마도 5분의 4는 버린 것 같습니다.
덩치 큰 가구들은 모두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시집올 때 장만했던 거울있는 화장대와 큰 서랍장도 포기해야 했고
소파세트, 안마의자, 김치냉장고를 비롯한 여분의 냉장고
6인용 식탁 모든 게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다 정리해야 했습니다.
중고 물품 파는 곳에 넘겨볼 요량으로 앱을 깔고 물건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근사한 이야기를 써서 설명을 올렸어요.
놀랍게도 식탁, 딸의 침대 프레임, 소파, 화장대, 냉장고 등 많은 물건들이 팔렸습니다.
제가 글을 아주 잘 썼던 모양입니다.
운동기구, 책상, 그릇 등은 나눔했구요.
이사하기 전날까지 버리고 또 버리고 정리하고 또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사 전날까지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날설 말이 오고 갔습니다. 저는 쓸모없는 것부터 버리고 간다는 생각이었고
남편은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버린다 주의였습니다.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생각의 방향이었죠.
저는 정말 물건 정리가 힘들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를 협박하기까지 했습니다.
'너~ 내일 죽는다고 해도 이 물건들을 다 가지고 갈거냐?'
정말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물건 정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흉을 볼까 생각하면 당장 정리하지 않고는 못 배길테니까요.
특히 책은 가장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 사연과 역사가 있고 앞으로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게 되면 참고해야 할 자료이니까요.
'그래~ 이제 또 무슨 책을 쓰고 연구를 하냐? 이 세상에 좋은 책은 다 도서관에 있고 서점에 있단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가며 버리고 정리하며 이사를 마쳤습니다.
이제 아주 작은 식탁에서 남편과 둘이 앉아 밥을 먹습니다.
식탁이 어찌나 작은지 글자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합니다.
앉아서 손만 뻗으면 수저 서랍을 열 수 있고 소금통을 집을 수도 있습니다.
의자를 밀고 일어서면 코앞에 냉장고가 있구요.
옷도 몇 벌 남지 않아서 외출할 때 뭘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이니까요. 공공장소에 가거나 강연이 있을 땐 몇 가지 색깔의 똑같은 모양의 재킷을 돌려가며 입습니다.
머리가 복잡하지 않아 아주 좋습니다.
붙박이 옷장을 열면 얼굴 정도를 비출 수 있는 작은 거울이 문짝에 붙어 있어 거기가 제 화장대 노릇을 합니다.
거울 앞에 작은 상자를 두고 거기 몇 가지 화장품을 정리해 놓으니 근시한 화장대가 부럽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립스틱을 모아 작은 용기에 모아놓으니 아주 편리합니다.
그런데 이사를 오니 새로운 반가움이 있었습니다.
예전 KBS 보도국에서 일하던 몇 가정이 이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작정하고 모인 것은 아니고 맨 먼저 이 아파트에 들어온 K선생님이 아는 시람마다 이곳을 소개한 덕분이었습니다.
외형이나 시설은 일반 주거지와 다를 바가 없지만 이 아파트는 60세 이상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어서
단지내 구내식당에서 세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내가 벌써 왜 여기에 들어와야 하느냐고 내심 불만이었던 저는
부엌일을 졸업할 수 있다는 장점에 공기 좋은 이곳이 마음에 쏙 들어 버렸습니다.
KBS 출신 다섯 가족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고 해도
어떤 경우엔 한 달이 지나도 얼굴 한번 마주치기 힘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1주일에 한번씩 구내식당에서 만납시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주 금요일 아침 함께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편의점 옆의 휴게실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예전 보도국 사람들이니 오고 가는 이야기는 뻔하기도 합니다.
그 주에 중요한 시사 문제에 대해 한 말씀씩 할 때면 마치 보도국 본부장 회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는 집 정리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몸 아픈 이야기 병원가는 이야기 용한 의사 이야기도 합니다.
주중에 따로 또 같이 만나기도 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A선생님과 B선생님은 거의 매일 아파트 커뮤니티 룸에서 바둑을 두고
맛집을 발견하면 두 가정씩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갑니다.
최근에 가장 늦게 합류한 C선생님은 신고식을 겸해 마이크로버스를 대절해 우리 모두를 데리고 가을 단풍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 K선생님은 인사도 없이 먼저 천국여행을 떠나셨고
지난 달 B선생님 가정이 미국에 있는 아들들을 보러 긴 여행을 가셔서 이번 겨울은 빈 자리가 많아 허전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니어 아파트로 이사와 정리하고 난 후의 가벼움은 우리 삶에 여유로움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선물처럼 찾아온 느지막한 만남이 우리의 후반전 인생을 소소한 행복으로 든든하게 채워 줍니다.
언제나 기쁘고 행복하게 지금이 가장 젊은 날 오늘이 가장 빛나는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느끼게 해 주면서 말이죠!(아나운서 출신 신은경 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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