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돌봄, 동기화, 자유 -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 무라세 다카오

알라딘: 돌봄, 동기화, 자유


돌봄, 동기화, 자유 -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 
무라세 다카오
(지은이),김영현 (옮긴이)다다서재2024-03-11
원제 : シンクロと自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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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8,000원
Sales Point : 5,646

9.8 100자평(7)리뷰(3)

328쪽

편집장의 선택
"조한진희, 홍은전 추천"
저자는 일본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수많은 노인을 돌보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산뜻한 문체로 풀어 놓는다. 산뜻한 문체는 대체적인 일서의 특징이긴 하지만 이 책에선 특이하게 도드라진다. 노인 돌봄이라는 주제가 가진 묵직함과 비릿함에 비해 그의 반응과 분석이 깔끔하고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경솔하다거나 진지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고통의 프레임이나 거북한 감정 과잉, 혹은 냉철한 분석의 눈도 없이 저자는 단단한 생활형 인간으로서 현실을 본다. 그 눈엔 적당한 호기심과 적절한 애정이 서려있다.

그가 바라보는 돌봄노동은 본질적으로 양방향적이다. 돌봄 노동이라는 행위를 사이에 끼고 돌봄은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를 일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만 여긴다면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 시간과 감정을 쏟으며 함께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양쪽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이나 깨달음과 같은 부산물이 생긴다. 저자는 돌봄의 양방향성에 관하여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오직 현장에서만 길어올릴 수 있는 깨달음의 언어다. 이 진지하고 산뜻한 책은 현실의 노화와 돌봄을 새롭게 감각하게 한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2024.03.26)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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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소장인 저자가 수많은 노인들을 돌보며 겪은 일을 바탕으로 돌봄의 본질, 그리고 돌봄과 자유의 공존에 관해 쓴 책이다. 격리, 통제, 과도한 투약을 하지 않는 ‘요리아이’에서 노인들은 일정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쓰던 물건으로 방을 꾸며놓으며 언제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시스템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이곳에서 노인들은 수용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인지저하증(치매)을 겪고 있지만 저자는 이를 병이 아닌,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혼란에 기꺼이 동기화하고자 한다.

이 책은 특별한 요양원에서 지내는 여러 노인들의 일상을 통해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탈피함과 동시에 이론에 담기지 않는 돌봄의 본질,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상호작용, 돌봄과 자유의 공존, 시설의 탈시설화 가능성 등 ‘돌봄’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고찰한다.


목차


옮긴이의 말―‘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면
시작하며

1부 자유롭지 않은 몸끼리 동기화하다

1장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1 이론과 육성 │ 2 통하지 않는 느낌
3 살아 있는 몸의 한계 │ 4 먹지 않겠다는 선언
5 ‘싫어’에 이끌려서

2장 나
1 자유롭지 않게 되자 자유로워지다 │ 2 내 몸
3 ‘체감’이라는 사실 │ 4 기억 폴더의 불가사의

3장 두 사람의 나
1 사람의 몸은 쉽게 건드릴 수 없다 │ 2 쾌락과 폭력
3 동기화는 기분 좋아 │ 4 동기화일까, 탈취일까

4장 시간과 장소, 우리들
1 변화하는 지남력 │ 2 타임 슬립
3 시간과 장소를 맞추지 못하다 │ 4 발붙일 곳은 ‘혼란’
5 교감하는 몸들 │ 6 말려들 능력

2부 동기화가 어긋나면 자유로워진다

5장 집이 육체가 된 할머니
오줌 스위치 │ 거리의 기억과 연결되는 몸 │ 행방불명
알 게 뭐야 │ 용서 │ 한 사람을 위한 중계기지
고통 분담 │ 누워만 있는 게 나아 │ 천만에요 │ 망가진 장난감
집 지키는 할아버지 │ 고군분투하는 할아버지 │ 반전하는 몸

6장 ‘할머니’를 찾는 할머니
위험한 음색 │ 목소리의 파동 │ 신입의 당직 보고
나는 모르는 ‘나’ │ 내 경우에는
재현할 수 없는 일 │ 터부를 건드리다 │ 터부에서 해방되다

7장 사람을 죽인 할머니
창작되는 ‘이야기’ │ 살해당할 뻔한 하나코 씨
이혼 조정과 유두와 네덜란드인 │ 되살아난 어머니
약동하는 지성

8장 생각에 잠긴 할아버지
생각에 잠긴 자유로운 영혼
정상과 이상의 틈새에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계약이냐, 신뢰냐 │ 투명 돌봄 │ 반복되는 통장 │ 자살 지망
북극과 오카야마에 있는 우체국 │ 침수와 열사병
유연과 무연 사이에서

마치며
접기


책속에서


P. 65 자유롭지 않게 된 몸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준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됨으로써 나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진다. 내가 있는 공간이 어딘지 모르면 상황에 맞춰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설령 누워서만 지내게 되어도 정신까지 그 자리에 묶여 있지는 않는다. 자식의 얼굴을 잊어버림으로써 부모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신선하다. 분노와 증오에서 잘 벗어나게 되고, 기쁨을 느끼기 쉬워진다. 내가 지니고 있던 자기 개념이 무너지는 동시에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했던 규범에서 해방된다. 나라면 이래야 한다는 믿음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자유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화하여 새로운 ‘나’로 바뀔 뿐이다. 접기
P. 115 물론 좋은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돌보는 사람의 의식이 너무 앞서 나가면 노쇠한 몸에서 나오는 신호를 잡아내는 감수성을 기를 수 없다. ‘할 것’이나 ‘해야 하는 것’으로 머리도 몸도 가득해지면 어르신들의 몸이 내는 미약한 신호를 받아들일 여백이 생겨날 수 없다. 목적, 가치, 의미로 빈틈없이 메워진 돌봄에는 어르신들을 일상생활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 자동차의 핸들에 놀이 요소가 있듯이, 돌보는 사람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 접기
P. 140 실제 연령과 동떨어진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현상을 타임 슬립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 느끼는 감정과 유사한 과거의 감정이 동기화하면 과거의 ‘나’가 되살아난다고.
그렇지만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의 ‘나’가 계속 함께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7세인 내 몸에는 0세도, 13세도, ... 더보기
P. 148 혼란까지도 그 사람답다. 혼란의 한복판에 있는 당사자는 그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는 혼란의 한복판에 있어도 ‘그 사람다움’이 보인다. 극심한 혼란 속에 있는 사람을 도울 때, 돌보는 사람이 발붙일 곳은 바로 그 사람의 혼란이다.
P. 236 나는 ‘상냥함’이라는 말에 경계심이 있다. ‘사랑’ ‘배려’ ‘선의’ 등 비판하기 어려운 말에 기초해 돌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육체가 한계를 넘어섰을 때, 돌보는 사람은 이상적인 말이 지닌 중압감으로 스스로를 벌해버린다. 신입이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상냥함’으로 돌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속에 상냥하지 않은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속에 그때껏 만난 적 없는 ‘나’가 존재했던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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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돌봄은 사랑, 헌신, 배려, 선의 같은 말로 아름답게 짓눌려져 있다. 그래서 토론, 비판, 성찰의 틈이 없는 돌봄은 위험하다. 저자는 다양한 인지저하증을 겪는 노인들과 동기화·거리두기를 분열적으로 오가며 계속 틈새를 만든다. 나는 그 틈새를 통해 보호가 일방적 통제로 미끄러지지 않고, 자율성이 안전을 위해 함부로 훼손되지 않으며, 생명의 고귀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억압적 연명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 돌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지저하증은 우리 모두의 현재이자 미래이지만, 인지저하증과 함께 사는 방법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저자가 수많은 노인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돌봄에 몸을 기울이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그 길이 보일 것 같다.
- 조한진희(반다) (다른몸들 대표,《돌봄이 돌보는 세계》 편저자)

노인요양시설에 입사한 스물세 살 무라세 다카오는 집에 가야 한다고 간청하는 노인을 따라 그의 집에 가게 되고 거기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광경을 맞닥뜨린다. 돌보는 이들을 괴롭게 했을 노인의 끈질긴 요구가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짧고 강렬한 도입부를 읽고 나는 저자에게 마음을 내주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만난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역사와 ‘그 사람다움’뿐만 아니라 돌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붕괴와 재생의 과정을 생생하게 표현해냄으로써 이론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현장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세밀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 굉장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가진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관한 오래된 편견을 뿌리째 흔들어버릴 것이다.
- 홍은전 (작가, 인권동물권기록활동가, 《그냥, 사람》《나는 동물》 저자)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2024년 3월 7일자 '책&생각'
문화일보
- 문화일보 2024년 3월 8일자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4년 3월 9일자 '새책'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4년 3월 7일자 '책과 삶'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24년 3월 9일자 '한줄읽기'



저자 및 역자소개
무라세 다카오 (村瀨孝生)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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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택로소 요리아이’ ‘제2택로소 요리아이’의 총괄 소장.
1964년 태어났다. 도호쿠복지대학교 졸업 후 태어난 곳인 후쿠오카현 이이즈카시의 특별요양노인홈에서 생활지도원으로 8년 동안 근무했다. 그 후 시타무라 에미코를 비롯한 세 명의 여성이 후쿠오카시에 설립한 ‘택로소 요리아이’에 자원봉사자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요리아이’는 인지장애가 있는 고령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우선하며, 당사자가 본래의 생활 리듬대로 살다 평온하게 임종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하는 곳이다. 일정표를 강요하지 않고, 격리하지 않고, 약물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등 ‘요리아이’의 방식은 새로운 돌봄의 가능성을 보여주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요리아이’의 설립 경위에 관해서는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푸른숲 2017)에 자세히 쓰여 있다.
지은 책으로 『소변의 포물선』 『정신 나가도 괜찮아』 『할머니가 노망났다』 등이 있다. 『돌봄, 동기화, 자유』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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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돌봄, 동기화, 자유>

김영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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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기획편집자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들었고, 현재는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1, 2』 『서로 다른 기념일』 『나를 돌보는 책』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오작동하는 뇌』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은하의 한구석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다』 『목소리 순례』 『먹는 것과 싸는 것』 『마이너리티 디자인』 『물속의 철학자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프리즌 서클』 『양손에 토카레프』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돌봄, 동기화, 자유』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 등이 있다. 접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돌봄의 한가운데에서 자유를 발견하다

조한진희, 홍은전 강력 추천!

격리도 통제도 없는 특별한 요양원의 자유로운 노인들
‘나답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돌봄

『돌봄, 동기화, 자유』는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소장인 저자가 수많은 노인들을 돌보며 겪은 일을 바탕으로 돌봄의 본질, 그리고 돌봄과 자유의 공존에 관해 쓴 책이다.
격리, 통제, 과도한 투약을 하지 않는 ‘요리아이’에서 노인들은 일정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쓰던 물건으로 방을 꾸며놓으며 언제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시스템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이곳에서 노인들은 수용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인지저하증(치매)을 겪고 있지만 저자는 이를 병이 아닌,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혼란에 기꺼이 동기화하고자 한다.
이 책은 특별한 요양원에서 지내는 여러 노인들의 일상을 통해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탈피함과 동시에 이론에 담기지 않는 돌봄의 본질,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상호작용, 돌봄과 자유의 공존, 시설의 탈시설화 가능성 등 ‘돌봄’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고찰한다.

문을 잠그지 않는 특별한 요양원의 노인들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서 살아갈 순 없을까

“우리는 고령자를 부담스러운 짐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격리하지 않습니다. 구속하지 않습니다. 약에 찌들게 하지 않습니다. 노화의 시간과 리듬에 어우러지며 고립되기 쉬운 어르신 및 그 가족들과 함께합니다.”
‘요리아이’가 홈페이지에 내건 설립 이념이다. 1991년 시설들에 거부당해 갈 곳을 잃은 한 노인을 위해 사찰의 작은 방을 빌리는 것으로 시작된 ‘요리아이’는 노인들을 일정표대로 움직이도록 통제하지 않고 가두지도 않는다. ‘요리아이’의 노인들은 자신이 원할 때 먹고 잘 수 있고 식판이 아닌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함께 모여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돌봄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요리아이’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노인들은 언제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직원들이 따라 나가 노인들과 동행하지만, 혹시 직원이 모르는 사이에 나간다 해도 괜찮다. 인근 주민들이 홀로 걷는 노인을 발견하면 시설로 전화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 돌봄’ 체계를 만든 것도 ‘요리아이’의 직원들이다.
저자는 시설에 사는 사람/시설 밖의 사람, 이상이 있는 사람/정상인 사람으로 세상을 양분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사람은 가둬도 된다고 말하는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정신이 흐릿해진 노인을 왜 가둬야 할까? 조금 오락가락할지라도 그 혼란에 어우러지며 함께 살 수는 없을까?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서 사는 노인을 이 사회가 지켜봐줄 순 없을까?

동기화에서 발견한 돌봄의 본질
돌봄과 자유는 공존할 수 있을까

돌보는 이들은 돌봄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당사자와 ‘동기화’를 시도한다. 동기화가 성공하면 일은 수월해지고, 돌봄을 하는 이도 받는 이도 편해진다. 그러나 저자는 동기화만을 목표하면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게 될 수 있으며, 오히려 동기화에 실패했을 때 자유롭게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동기화하기 위해 두 사람이 노력하는 그 시도 자체에 돌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인지저하증을 겪으며 혼란에 빠진 사람을 돌볼 때 무조건 통제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혼란에 함께 어우러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당사자의 언동에 대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정상인지 판단도 교정도 하지 않고 그저 그 혼란에 함께할 수 있을 때, 돌봄을 하는 ‘나’와 돌봄을 받는 ‘나’, 두 사람의 ‘나’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인지저하증 당사자의 자유만이 아니라 돌보는 이의 자유 역시 강조한다. ‘요리아이’에서는 돌봄을 하던 직원이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몰릴 때 언제든 도망치라고 당부한다. 돌봄을 하다 보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감정, 윤리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상냥한 줄만 알았던 자신에게서 낯선 ‘나’가 튀어나오며 ‘나’가 붕괴되는 순간이다. 자칫하면 학대와 방치로 이어질 수 있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 저자는 ‘요리아이’의 시설장으로서 직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도주’를 인정해준다. 최선을 다해 돌보지만 위태로운 순간에는 도망칠 수 있는 자유. ‘자유’가 돌보는 이와 돌봄 받는 이, 두 사람을 구원한다.
‘요리아이’에는 아침 회의 시간이 있다. 지난밤 당직 직원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하는 자리다. 직원은 지난밤 “‘나’가 어떻게 붕괴하고 재생했는지”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고 다른 직원들은 함께 들으며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축복한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 모든 걸 날려버린다.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대한 새로운 정의
언젠가 다가올 노인을 위한 나라를 꿈꾸며

노화는 곧 기능 상실이자 쇠퇴이며 부자유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노화가 번데기 속에서 형체를 바꾸듯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역동적인 변화이자, 규범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흔히 인지저하증을 사회적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인지저하증으로 인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잊어버리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증상이 오히려 당사자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해체하며 새로운 자유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인지저하증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인 것이다.
인지저하증에 걸리면 본래의 내가 사라진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오랜 세월 수많은 노인을 돌봐온 저자는 인지저하증이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인품은 앗아가진 못한다고 말한다. 노인들은 각자 다른 형태로 찾아온 혼란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의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그 사람다운’ 노인들을 인지저하증이라는 하나의 방에 가둘 순 없다. 인지저하증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직간접적인 미래가 될 것이다. 저자는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화두와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이가 들고 병들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게 당연한 일일까? 인지저하증에 걸리더라도 고립되지 않고 억압받지 않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을까?
소수의 시설과 전문가에게 돌봄의 책임을 떠맡기는 사회에서는 자유와 인권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지역 단위로 돌봄의 영역을 확장하고 개인들은 언제든 타인의 돌봄에 기꺼이 “말려들”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돌봄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요리아이’(한데 모임)라는 이름처럼, 우리 역시 한데 모여 고민하고 돌봄을 모두의 일로, 모두의 책임으로 나눠가질 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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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8





기억을 못 하고, 다르게 기억하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몸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다른 몸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른 몸을 보는 저자는 동기화되는 몸을 생각합니다. 잊었기 때문에 새로운 말과 행동이 가능한데, 그 행동들을 지켜보고 돌보는 일은 단순하지도 쉽지도 착하지도 않습니다.
2024-03-17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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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임종을 지키지 못해 마음 한 켠이 늘 무거웠는데, 그 무거움을 단박에 날려준 문구였다. 노화, 치매, 장애, 죽음, 돌봄을 바라보는 인지 전환을 선사하는 책이다. 생생하고 짠한데, 한편으론 유쾌하다. 최고의 돌봄 이야기. 저자에게 반했다. 강강추!
행복한책읽기 2024-07-08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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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가 없는 나이듦, 병듬… 앞에선 어르신들의 현주소를
통해, 이제 내몫으로 다가올 현실을 보게하고, 이미 불편하신분들께 어떤 마음이어야 할지를 생각케해주었다.
gaudium 2024-05-25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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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돌봄, 동기화, 자유


gaudium 2024-04-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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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리아이의 숲˝의 돌봄 이야기



지은이는 일본 "요리아이의 숲"이라는 요양원에서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인데 일을 하면서 노혼, 인지장애를 겪는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고 느낀 점과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대한민국도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데 지금과 같은 정도의 시설과 돌봄 인력으로 잘 운영하려면 우리 보단 먼저 경험한 일본의 돌봄 체제를 익혀두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부모 그리고 언젠가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으므로.




”만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끝없이 정교한 올바름을 추구하는 세계에서 ‘나’의 주관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드는 방법론에 ‘나’의 느낌은 전혀 필요 없지요. 하물며 ‘나’의 생각 따위 장해물일 뿐입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라져갑니다.“

”집에는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생활이 새겨져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고여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신체 기능을 읽어버렸는지 집은 가르쳐준다.“

”죽을 때는 언제나 혼자다. 혼자 죽는 건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제어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가 죽어 있었다.’ 이 문장에는 사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노화=부자유’라는 등식이 뇌리에 새겨졌다. 내 착각이었다. 입보다 유창하게 말하는 눈빛,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동자,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무당과도 같은 말솜씨, 독창성 넘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창의력,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혼란, 자신의 위기를 남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감각, 신념으로 가득찬 주관, 추종을 불허하며 뻗어나가는 사고, 순발력 있는 지성, 체력과 비례하지 않는 지속성,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도약력. 노쇠한 사람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꿔서 적어 본 것“

”늙은 몸은 사람마다 다르게 변형되어 있다. 몸의 일부는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기도 하고, 일부는 쉬지 않고 움직이기도 한다.“

”노쇠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에 손대게 한다. 그 몸을 맡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댄다.“

”수명이 다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손대는 방식도 달라진다. 식사, 배설, 목욕, 수면, 등의 행위가 이뤄지도록 하는 ‘손대기’에서 생명을 느끼기 위한 ‘손대기’로 변화하는 것이다.“

”신체장애 때문에 특정 행위를 잃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말하면 신체장애가 없는 몸과 신체장애가 있는 몸에는 각각의 몸에 맞는 활동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시간과 공간을 가늠하지 못하고, 기억이 어렴풋해도 ‘그 사람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라는 것은 몸이라는 자리에 쌓인 시간일 듯싶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르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말은 그렇지만,이라고 태도를 바꿔 속박하거나 가두어도 괜찮은 이유를 ’노혼‘과 ’인지저하증‘ 등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돌봄 현장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다. 돌봄을 정성스러운 무언가로 채색함으로써 떳떳하지 못한 가해자성을 사회 전체가 숨기고만 있는 것이다.“

”자유와 안전은 서로 밀어내는 자석처럼 사이가 나쁘다.“

”돌봄의 묘미는 하나의 행위를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몰랐던 ’나‘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협력 체제가 제때를 맞추지 못해서 더 이상 못버티겠다 싶으면 ’도망쳐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설령 고의가 아니라 해도 반사적으로 어르신을 넘어뜨리거나 하기 전에 도망쳐달라고. 육체의 한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의식하면서 일하기 바란다고. 최종수단으로서 ’도주‘를 시설장의 책임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거의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그 순간 창작되어 다시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한꺼풀 벗겨보면 ’이야기‘에는 지어낸 사람의 기쁨, 슬픔, 분놀, 작은 죄의식 등이 숨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삶‘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사실보다 진실의 존재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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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랑 2024-07-1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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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돌봄, 동기화, 자유

언젠가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모습에 대하여, 돌봄에 관한 경험을 풀어쓴 책이다.
뿌웅뿡뿡 2024-05-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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